조선일보(시론) 개발보다 환경이 먼저다....유재명(2003.3.4)
우리나라는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40년 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개발계획을 내놓고 산을 허물고 바다를 매립하며 새로운 도시를 만들고 공장을 건설했다. 이러한 정책을 세울 때는 사전에 환경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함에도 경제논리로 우선 공사부터 강행했다.

당초 농업용수로 쓰려던 계획이 백지화된 시화호는 상처만 남겼고, 동강댐 건설이 동강의 비경만 알린 채오염만 가중시켰다. 새만금사업은 공사비 8000억원을 쏟아 붓고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바람의 방향을 고려치 않고 세운 시화공단에서 나오는 악취와 매연은 안산·시흥시의 주택가가 뒤집어 쓰고, 울산·온산공단의 악성대기오염으로 주민들이 이주를 해야했다. 이러한 환경악화로 호흡기 환자가 날로 증가하고 심각한 수질오염과 각종 산업용 물질에 의한 환경호르몬이 국민건강에 큰 위협적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에 인구밀도가 높아 국토 환경용량이 적은 데다 산업의 오염집약도가 높은 관계로, 다른 국가에 비해 환경영향 평가가 강화돼야 함에도 건설, 개발중심의 제도로 인해 도리어 환경악화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리나라의 환경영향 평가제도는 1977년 12월에 제정돼 1990년의 주민의견 수렴을 의무화하는 등 몇 년동안 대폭 보완되고 강화됐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환경을 평가하기에는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어 현행 제도로는 국가 환경관리에 대한 국민의 신뢰만 떨어뜨릴 뿐 효과를 거두기는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 환경현실에 맞는 제도로 고쳐 나가야 한다.

첫째, 개발 사업을 기정사실화 해놓고 사업 후 오염 저감에 역점을 두는 환경영향 평가제도를, 사업 시행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해 그 결과로 사업 시행 여부를 판단하는 사전관리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사업이 시작되어 환경이 한 번 훼손되면 다시 복원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과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둘째, 국가 개발 사업정책에 대해 법, 제도에 이르기까지 환경영향 평가를 의무화해야 하며 단위사업체뿐 아니라 전체의 통합된 환경영향을 평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만금, 시화호 등의 단위사업뿐 아니라 서해안 간척사업 전체를 놓고 환경을 평가해야 서해의 환경 기능을 알 수 있다.

셋째, 현재 사업자 스스로 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하든지 사업자가 평가대행자를 선정해 작성하도록 되어 있는 제도를, 사업자가 아닌 전문적이고 객관성 있는 기관에서 평가서를 작성하고 관리해야 한다. 현 제도로는 사업을 목적으로 사업자에 유리하게 작성할 수밖에 없고 짧은 기간에 예산을 적게 들여 수행하기 때문에 내용이 부실할 수밖에 없다.

넷째, 주민의견 수렴에서 그 지역주민으로 제한하고 있는 제도를 일반국민도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역 주민은 환경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지역에 경제적 이익이 있을 경우 의견 제시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 사업승인조건을 잘 지키고 있는지 사후 환경감시 및 감사기능도 강화돼야 하며 위반에 대해서는 엄격한 처벌도 따라야 한다.

환경영향평가서는 환경 문제를 지적하는 보고서인데도 이런 잘못된 제도 때문에 우리나라 중요한 사업의 환경영향 평가서 어느 곳에서도 환경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보고서를 찾기 어렵다. 새 정부가 핵폐기장 건설을 확정해야 하고 수도권 이전 등의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데, 이러한 정책들이 사전에 환경성이 충분히 검토되어 국민적 합의하에 추진되기를 바란다. 새 정부에서 모든 사업은 환경성을 고려할 것이라는 약속을 잘 지켜주기를 기대하며 이젠 개발보다는 국토복원 5개년 계획정책을 내놓을 때가 됐다.

(유재명/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