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방초로 봄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오월 셋째 주 수요일(5/13), 오늘은 51회, 3학년 2반 월례 반창회 날입니다.

 

그런데, 이번 반창회는 3학년 담임을 맡으셨던 한 춘배 선생님과 사모님을 모시고, 조촐하나마 사은회를 겸하기로 하였으니, 어찌 보면 역사적인 날이 될 것 같습니다.

 

약속한 7시로 시계 분침과 초침이 달려가고 있을 즈음에, 교대역 근처의 한정식 ‘민속관’ 으로 3-2배지를 단 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시 후면 있을 해후를, 우린 얼마나 기다려왔던 것 일까. 물론 중간 중간에 20주년, 30주년 홈커밍 행사가 있었고, 그 때 선생님을 뵌 사람들도 있겠지만, 개중에는 졸업 후 처음인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 호롱불 켜놓고서 얼굴도 모르는 신랑과의 첫날 밤을 기다리는 수줍은 앳된 신부의 마음이 이럴까?

 

선생님을 서울역에서 픽업하여 호텔에 체크인 한 후에, 이리로 모시고 오는 송승기 총무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도착예정 5분 전이란다. 모두들 서성거리고, 명찰도 제대로 목에 걸고, 꽃 다발도 다시 살펴보고, 주방에 이것저것 알아보고, 그냥 바쁘네, 오늘은…

 

정확히 7시…"민속관" 안으로 선생님이 걸어 들어 오시는데, 기다리고 있던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습니다. 완전히 예상을 뒤엎는 모습이었습니다.

 

70을 훌쩍 넘기셨으니, 거의 흰머리에다, 탄력을 잃어 쭈글거리는 주름 골이 패인 피부, 뼈에서 칼슘이 빠져나가 쫌 오그라지고 왜소해진 체구, 영락없는 나약한 중늙은이일 거라는 우리의 예측은, 가끔은 틀리는 일기예보처럼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물론 염색을 하셨겠지요. 하지만, 흰머리 하나 없고, 뚜벅뚜벅 밀어 부치는 걸음걸이며, 악수할 적의 그 두툼한 공포정치 시절의 손바닥하며, 호쾌하며 트인 목소리며, 한 마디로…위풍당당!! 오 마이 갓입니다.

 

좀 그을린 얼굴에 양 눈 가에 접힌 주름들을 좀 제외하고는. 침묵과 겁먹음에 숨죽인 교실 공기를 가르며 교실을 뺑글뺑글 돌며 연타를 날리시던 바로 그 35년 전 모습이셨습니다. 아마, 개중에는 그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물론 있겠지요. 하지만, 과거는 흘러갔고, 이젠 추억만이 남았습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아련하고 짜릿한 그 손 맛에 이끌려 오늘의 자리가 만들어지고, 많은 친구들이 모여 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두 분 모두 건강하신 모습에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또, 저희들 모두를 배려하시는 마음에서 멀리 서울 나들이까지 흔쾌히 허락해주시어 더욱 감사하였습니다.

 

송 총무 사회로, 공식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개회사를 필두로 사은회를 열기까지의 경과보고가 있었고, 이어서 모두들 도열하여 선생님께 큰 절을 올렸습니다. 35년 묵은 애증과 감사의 표징으로 말입니다. 절을 받으신 선생님께서 한 말씀 해 주셨습니다. 모두들 열심히 사회에서 제 역할을 잘 하고 있는 것 같아 반갑고 자랑스러우며, 이젠 건강에 특히 신경을 써야 한다는 조언도 더해 주셨습니다. 준비한 기념 케익을 자르고, 오색 장미꽃이 한 아름 담긴 꽃다발과 여기저기서 답지한 선물도 드렸습니다. 이어 각 자의 근황과 지나온 역정을 간략히 소개드렸고, 함께 “위하여” 를 외치며 건배를 하였습니다.

 

8시가 넘어서야 비로소…늦은 식사를 시작하였습니다., 소주 잔 한 순배가 돌고…이어서 김도훈 동기 주관으로 폭탄주 한 순배가 러브 샷으로 돌고…벌써 정신줄 놓은 몇몇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만감과 함께 간간히 들이킨 알코올로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자, 지난 35년이란 시간과 공간으로 막혔던 격세지감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 저기서 옛적 망월대 아래 칠산동, 그 시절 얘기들로 왁자지껄해졌습니다. 역시, 주빈이 한 샘이신 만큼 역시 자주 귓전을 때리는 중복어, 핵심어는 언제 왜 뭐 하다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랑, 난타당했다는 얘기.

 

이날의 압권은 게스트로 참석해준 이익환 동기의 얘기. 같이 참석한 김정환 동기가, 무슨 일인지 그 날이 장날이라 반 전체가 연타를 당한 적도 있다고 하자…자기는 같은 반인데 무사했다고…그 연유를 물으니, 그 날 결석했단다.…와우~ 모두들 뒤로 넘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쉰들러 리스트라고 해도 될 듯, 51회 중에서 생존자가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으려나…35년이 지났으니 공소시효도 벌써 지났고…이제사 선생님 면전에서 박장대소하며 웃을 수 있지…그 시절에야…아이고 무시라. 언감생심입니다.

 

정말 유쾌하고, 기분 좋고, 세월의 무게를 느끼면서도, 돌이켜 무엇인가를 새겨보고 앞날을 그려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기실은… 만나러 오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막상 만나면 허물없고, 어려울 것이 없는 것이 옛적 친구가 아닌가 합니다. 비록 다음을 기약하지는 않았지만, 다시 이런 자리가 마련된다면, 다들 또 뜻을 같이하여 모여주리라 믿습니다. 우린 동래고 51회이니까요.

 

오늘의 사은회가 있기까지 애써준 친구들이 많습니다. 샘을 편하게 잘 모시느라 애써준 김정환 동기, 생물반 대표로 나온 이익환 동기, 51회 재경동기회를 대표하여 선물도 가져온 전찬수 동기, 30분 후에 약속이 있으면서도 잠깐 들러 샘께 큰절을 올리고 떠난 김우기 동기, 건강선물을 보내준 허진 동기, 그리고, 자리를 같이해준 우리 3-2반 친구들, 김도훈, 백용주, 이영우, 조기식, 조용흥, 최철호, 홍진관, 특히 부산과 진주에서 올라와준 오상준, 윤정배 동기, 준비위원인 강정중, 노용국, 백원용, 송승기 동기, 그리고, 출장, 개인 사정으로 오늘 참석하지 못하였지만 성원해준 3-2반 친구들, 금일봉을 보내준 권현칠 동기 모두 고맙습니다. 차린 것, 마련한 것 별 것 없어 보여도, 준비하려면 손이 많이 간 답니다..

 

어느덧 까까머리 우리들이 이젠 반백이 되었고, 또 동고시절 또래의 자식을 두거나, 벌써 시집장가를 보낸 부모도 되었습니다. 35년의 시간이 결코 짧은 것이 아님에도, 그 시절의 인연이 있었기에 오늘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 건강 하십시요. 다음에 또 저희들이 뵙기를 청하면, 오늘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나와주시기 부탁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