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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서울 망우동에 있는 혜원여고 기숙사에서 2학년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 일반계 고교 중 처음으로 기숙사를 운영 중인 이 학교는 방학 에도 학생들이 학교에서 생활하며 공부한다.[김형수 기자] | |
부산고는 새해 ‘학교를 살리겠다”며 동문을 상대로 100억원 모금에 나섰다. 박규찬 교장(동래고 47회)은 “외국어고·과학고 등 특목고에 이어 자율형사립고(자율고)에도 좋은 학생을 빼앗기면 정말 힘들다”며 “동문이 기수별로 돈을 모아 학교를 살리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그는 “전국 고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수 학생 유치가 필수”라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의 환일고는 방과 후 심화반을 운영해 학생 실력을 키우고 있다. 2008학년도 수능에서 전국 고교 중 유일하게 수능 만점자도 배출했다. 이 학교는 모의고사와 내신성적을 토대로 1등에서 30등까지의 학생을 심화 A, B반으로 나눠 방과 후와 방학 중에 집중 지도하고 있다. 임원규 교감은 “특화 프로그램으로 강남 학교와 경쟁하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는 이미지와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전국의 일반계 고교들이 ‘생존 경쟁’에 뛰어들었다. 우수 학생이 특목고와 자립형사립고(자사고)에 몰리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올해 30개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자율고를 100개 세우면 2류, 3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다. 대학 진학률과 학업성취도 같은 학교 성적표가 담긴 인터넷 정보공시제가 본격화돼 학교 간 실력도 드러나게 된 것도 원인이다.
전국의 고교 수는 1493개다. 일반계고는 과학고(20곳), 외국어고(30곳), 자사고(6곳), 국제고(4곳) 등 60곳과 자율고 100곳과 경쟁해야 한다. 특히 서울 일반계 고교는 올 하반기 고교선택제가 시행돼 ‘선호’ ‘기피’가 뚜렷해질 전망이어서 비상이 걸렸다.
◆우수학생 유치 비상=서울고는 지난달 11일 동문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발전기금을 모금해야 하는 사유’라는 제목의 편지에는 “학생이 기피하는 학교로 연속 지정되면 퇴출한다고 교육청이 발표했다”고 쓰여 있다. 지난해 말까지 100억원을 목표로 95억여원을 모았지만 계속 모금할 예정이다. 박희송 교장은 “우수 교사를 잡아두기 위해 연수비를 지원하고 장학금도 늘리겠다”며 “기숙사 건립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서울 혜원여고는 선택받는 학교를 목표로 지난해 9월 기숙사를 만들었다. 고3생 50여 명은 매일 오후 11시까지 자습실에서 공부한 뒤 기숙사에 머문다. 그 결과 2008학년도에 한 명도 없던 서울대 수시합격자가 두 명 나왔다. 수도권 대학 수시합격자도 80여 명에서 110명으로 늘었다. 이자흠 교장은 “기숙사와 자습실 공부 효과가 좋아 고2 학생들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김연아 선수가 다닌 군포 수리고는 수업시간에 시·소설·수필을 가르치는 문예창작팀을 운영 중이다. 전국 처음이다. 군포시와 경기도교육청이 4000만원씩 대준다. 문미향 교사는 “교육과정을 특화해 오고 싶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보전도 시작됐다. 서울 양천구 신목고는 교문 앞에 ‘학력신장·진로교육·학교 경영 우수학교’라는 현수막 세 개를 걸었다. 학교 측은 “고교선택제를 앞두고 학교를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반계 고교의 고민=여의도여고 이준순 교장은 “정부가 지원하지 않으면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열악한 여건의 학교에 우수 교사와 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곡고 송영섭 교장은 “일반고에도 교과운영 자율권을 보장해줘야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교장들은 “학교 다양화 프로그램 취지는 좋지만 일반고를 방치하면 공교육 전체가 붕괴된다”고 주장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정부 재정결함보조금(정부가 사립학교 운영비를 대는 지원금)을 자율고 대신 일반고 지원에 쓸 계획이다. 연평균 24억원이며, 자율고가 100개 설립되면 2400억원을 투자할 수 있게 된다.
중앙대 이성호(교육학) 교수는 “정부가 소외지역과 비선호 학교에 투자를 늘리면 자율고 도입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며 “일반고도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자극을 주고 지원에 차등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현목·민동기·이종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