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야를 대하니 너무 반갑고 후배들의 활동이 기대됩니다.
격려하는 의미랄까. 아끼는 수필 한 편을 축하의 뜻으로 올립니다.

                                또한 장의 사진
                                                                      이  호  상
 연이와 나는 이웃에서 살았다. 골목을 사이에 하고 대문이 마주보는 집이었다. 밥만 먹으면 쌍둥이처럼 붙어 지냈다. 학교도 같이 다녔다. 초등학교 6년 동안 한 반이었다.
 둘 다 같은 절에서 칠성님께 불공을 드려 태어났다. 생일도 꼭 한달 차이다. 내가 본 칠월 초닷새이고 연이는 윤 칠월 초닷새이다.
 태몽도 둘 다 별에 관한 것이다. 나는 어머니 꿈에 우리 마당에 별이 떨어져 수북이 쌓인 것을 쓸어 담으니 모두 꽃잎이 되더란다. 연이는 그 할머니 꿈에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별이 열려 사다리를 놓고 땄단다. 그래서 보통 인연이 아니라고 했다.
  두 집 모두 일흔이 넘으신 증조모님이 계셨는데 친구였다. 어릴 때부터 농담 반 진담 반 각시와 신랑으로 공언을 하셨다. 아이들이 놀릴 때마다 나는 좀 창피했으나 연이는 오히려 큰 소리로 긍정하는 편이었다.
 6학년이 되는 초여름이었다. 하교 길에 개울에서 아이들과 징검다리 여섯 개를 눈을 감고 건너는 내기를 하다가 발을 헛디뎌 밑쪽에 있는 웅덩이에 빠졌다. 내가 눈을 떴을 때 다른 애들은 다 달아나고 연이만이 나를 엎어놓고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먹은 물을 토해내고 정신이 들자 그제야 나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동갑이었지만 연이는 나보다 힘이 셌고 키도 컸다. 그리고 배짱이 좋았다. 그 날 기진맥진한 나를 업고 와서도 힘이 남았다고 그 후에 자랑을 하였다.
 어릴 때 몸이 약했던 나는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그 일이 있은 후 머리가 아프고 자꾸 헛것이 보여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속이 메스껍고 더러운 것이 눈에 떠올라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눈만 감으면 누에 같이 생긴 벌레가 수없이 기어 다니는 환영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두 달 가까이 쉬는 동안 연이는 매일같이 나와 놀아주었다. 마침 6.25 전쟁이 일어나 그때 군부대가 학교를 차지해 휴교를 하였다. 아침부터 와서 자러 갈 때까지 같이 있었다. 점심도 저녁도 함께 먹었다. 쉴 새 없이 많은 얘기를 했다. 아무것도 아닌 얘기도 연이가 하면 재미가 있었다.
 이러는 사이 내 병도 나아갔다. 입맛이 생기고 두통도 사라졌다. 환영도 없어지고 잠도 잘 자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연이는 정신과 의사노릇을 한 셈이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던 해에 연이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 중학교가 있는 울산보다 부산 쪽으로 세 배나 더 먼 데로 간다고 하였다.  
 나의 사춘기는 고등학교 때 시작된 것 같다. 연이가 그리웠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오면 연이가 살던 집을 먼발치서 바라보았다. 연이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달려 나올 것만 같았다.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연이와 관련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담 모퉁이를 돌면 금방이라도 귀여운 입술을 오물거리며 말을 걸어올 것만 같았다.
 그 이후 연이는 내가 여성을 보는 기준이 되었다. 아무리 미인이라 해도 연이를 닮은 구석이 하나라도 없으면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밥을 먹을 때 어머니가 내 눈치를 보아가며 연이가 지난 겨울에 부산으로 시집을 갔다는 얘기를 했다. 신랑은 돈 많은 홀아비인데 서른 일곱 살이었다. 말하자면 팔려간 셈이었다. 여기 있을 때부터 연이 아버지가 노름을 하여 집안이 쇠락했던 것이다.  
 연이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예쁘고 활달하던 연이가 그런 데 시집을 가서 기가 죽을 것을 생각하니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이사 갈 때 연이를 우리 집에 붙잡아 두지 않은 부모님이 원망스러웠다.  
 밥을 먹다말고 밖으로 나왔다. 물이 말라붙은 개천바닥에 팔베개를 하고 누웠다. 유월의 긴 해가 서쪽하늘에 지고 있었다. 남쪽하늘에 떠서 보면 연이가 사는 집이 보일 거다. 고 작은 것이 시집살이 할 걸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세 살 아래 내 누이가 따라 나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연이가 결혼하기 전 여기 들렸을 때 부산 집 주소를 맡겼다.
 내가 연이네 집을 찾은 것은 몇 달 후였다. 용기가 없어 친구와 같이 갔다. 집이 아주 컸다. 고생은 안할 것 같아 우선 마음이 놓였다. 연이의 목소리가 났다. 5년 만에 듣는 그리운 목소리였다.  
 내 목소리를 듣자 얼어붙은 듯 조용했다. 대문은 열지 않고 훌쩍거리며 울었다. 한참을 울더니 문틈으로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는 사정이 있어 지금은 도저히 만날 수가 없으니 돌아가 달라고 했다. 나는 연이가 화상을 입지나 않았나, 몹쓸 병이 걸리지나 않았나 하고 가슴이 철렁했다. 친구가 나를 먼저 가라고 했다. 꾀 많은 내 친구가 숨어 있는 줄도 모르고 연이가 나왔다가 들켰다. 그때 연이는 만삭이라 부른 배를 보이기 싫었나 보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나는 연이를 잊었다. 고향에 가서 연이가 살던 집을 보면 생각이 나곤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니 마음에서도 멀어졌던 것일까.      
 그런데 재작년 오십년 만에 연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제가 누군지 알겠냐는 목소리를 듣고는 직감적으로 연이임을 알 수 있었다. 긴 단절의 시공을 건너 뛰어 내가 바로 알아 맞추자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전화기에 대고 흐느꼈다. 어떻게 알 수 있었냐는 물음에 나도 모르겠다는 대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마침내 연이를 만나러 갔다. 부산에 내려 전화를 했더니 같이 살고 있다는 큰딸이 받는다. 그녀가 아파트 주소를 알려 주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얼마나 변했을까. 키는 얼마만 할까. 뚱뚱할까. 말랐을까. 지금도 말을 할 때 입술을 귀엽게 오물거릴까. 웃을 때 보조개는 그대로일까. 옛날처럼 얘기를 재미있게 할까. 무슨 말부터 해야 할까. 어떤 것들을 물어볼까. 남편은 어찌됐을까.
 나는 기대와 흥분으로 소년처럼 얼굴이 벌겋게 되어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 연이가 웃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갸름한 얼굴에 까만 눈과 오뚝한 코와 귀여운 입술과 보조개가 옛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연이가 아니었다. 연이를 빼닮은 큰딸이었다. 내게 큰절을 했다. 그녀에게서 어머니가 한 달 전에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자 나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꼭 한번 뵙고 싶어 돌아가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누렇게 퇴색한 접은 종이를 내놓았다. 6학년말에 연이가 우기어 사진관에서 우리 둘이 찍은 사진이었다. 영양실조에 걸린 듯 비쩍 마른 촌뜨기 어린이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는 찍은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마흔 네 살에 남편이 죽었는데 나에게 짐이 될까봐 알리지 않고 사진만 만지작거렸을 가엾은 연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만나줄 수도 없었다. 죽음이 임박해서야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어 했으나 예나 이제나 바보 같이 굼뜬 나는 이렇게 늦어버렸다.
 연이의 딸이 안방에서 또 하나의 사진액자를 가져왔다. 중년의 연이가 거기 있었다. 연이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옛 모습 그대로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원망하는 표정은 없었다.
 내가 볼 것을 미리 알고 일부러 보조개를 짓고 입술을 귀엽게 오므리고 찍은 것일까. 어릴 때 기억보다 훨씬 더 예뻤다. 사진을 만져보았다. 싸늘한 유리의 감촉뿐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동그란 눈동자도 재잘거리던 귀여운 입술도 아니었다. 목소리도 없었다. 흐느낌도 없었다.
 나는 마치 내 반쪽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허전함을 느끼며 아파트를 나왔다. 높은 건물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저기에 연이가 있을까.
 다음 생에 가서야 사진이 아닌 모습으로 자유롭게 만나볼 수 있을런지.